경제신문 스크랩

공공임대 20년 대기 … '주거복지 천국' 네덜란드의 추락

작은날 2023. 8. 16. 22:59

 

 

공공에만 의존해 주택 부족
"임대차, 민간 역할이 중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동쪽으로 5㎞ 떨어진 삼각형 모양의 인공섬 제이뷔르허르에일란트. 기존 산업단지를 주거·업무지구 등으로 재개발하는 곳으로, 세련된 건축 디자인과 친환경 자전거도시 콘셉트로 인기가 많다. 전체 주택(5500가구)의 30%에 달하는 사회주택(공공임대)의 임차료(방 2~3개 기준)는 560~700유로다. 암스테르담 평균 임차료(약 1410유로)의 절반을 밑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시민에게 이 사회주택 입주는 ‘그림의 떡’이다. 입주 대기 기간이 등록 시점부터 평균 12년6개월에 달해서다. 란즈미어 등 암스테르담 인근은 대기 기간이 20년이 넘는다.
  
   ‘공공임대의 천국’ ‘주거복지 선진국’으로 불리던 네덜란드가 역대급 주거난에 직면했다. 글로벌 연구기관 ABF리서치가 올초 네덜란드 정부 의뢰로 한 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주택 부족은 지난해 31만5000가구에서 올해 39만 가구로 23.8% 늘었다.
  
   지난 10년간 이민과 가족 분화 등으로 수요가 크게 증가했지만 사회주택 공급은 태부족이다. 네덜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사회주택은 230만50가구로, 2015년(230만4505가구) 이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1990년대 41%에 달한 사회주택 비율은 지난해 28.6%로 내려앉았다.
  
   민간 사회주택 공급 업체에 대한 과도한 세금 부과 등 인기영합주의 정책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리처드 로널드 암스테르담대 교수는 “공사 기간만 2년 이상 걸리는 비탄력적인 공급 구조에서 민간 기업이 사회주택을 외면하자 임차료가 폭등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역전세난과 전세 사기가 반복되는 국내 임대차시장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민간 업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진미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주거정책연구센터장은 “기업형 임대에 적절한 인센티브를 주고 일관된 정책을 운용해 민간과 공공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이유정 기자


프랑스 파리 17구에 개발되고 있는 생태 신도시 클라시바티뇰. 이곳의 주택 3400여 가구 중 절반이 시세 대비 임대료가 40%가량 싼 사회주택으로 공급된다. 외관을 비대칭적으로 설계한 데다 방이 최대 5개인 주택 내부에 발코니와 테라스, 개인 정원 등을 넣은 혁신 디자인을 적용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유정 기자


건설사, 1% 이율로 50년간 대출
질 좋은 임대주택 짓기 활발
연봉 1억 넘어도 입주 가능
국민 70%가 입주자격 얻어
일관된 정책 ‘민간-공공’ 상생

 

프랑스 파리 지하철 13호선 포르트드클리시 역에 내리면 비대칭 구조의 현대식 건물이 눈에 띈다. 파리시가 총 4조8000억원을 들여 생태 신도시로 재개발한 클리시바티뇰 지구(54만㎡)에 들어선 사회주택 단지다. 채광에 따라 자유롭게 창을 낼 수 있도록 한 이 건물의 주택은 방이 최대 5개에 발코니와 테라스, 개인 정원을 갖추고 있다.

   마틴루서킹 공원을 끼고 있는 데다 지하철 등 교통 인프라도 좋지만 주거비 부담은 크지 않다. 임차료가 월 600~800유로로 파리 시내 같은 크기의 주택 대비 40%가량 저렴하다. 교사인 마린 루시용은 “사회주택에 입주하면서 같은 주거비용으로 역세권에 방도 한 개 더 늘려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 1% 이자로 50년간 주택사업
  
   국제도시인 파리는 세계 주요국 수도 가운데서도 주택 가격이 높은 편에 속한다. 그렇다 보니 남의 집을 빌려 사는 비율이 67%에 달한다. 프랑스 정부와 파리시가 시장가격보다 싼 임대주택 공급에 주력하는 이유다. 특히 중산층용 임대주택 공급을 꾸준히 늘려 부동산 문제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리 사회주택 비중은 2001년만 해도 13.44%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말 기준 25%로 높아졌다. 프랑스 전체로도 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7%)과 미국(1.0%), 일본(4.1%), 독일(4.0%), 캐나다(4.1%)를 크게 웃돈다. 프랑스 정부는 2025년까지 국가 전체적으로 이 비율을 25%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전문가들은 프랑스에서 사회주택 공급이 꾸준히 늘어난 요인으로 공급 주체가 다양하다는 점을 꼽는다. 프랑스에선 파리 최대 사회주택업체인 파리아비타 등 공기업(OPH)과 민간기업(ESH)이 사회주택을 짓는다. OPH는 270여 개, ESH는 200여 개가 있다. 최근에는 민간 영역의 활동이 더 두드러진다. 지난해 공급된 총 10만 가구 중 60%를 ESH가 지었다.
  
   정부는 일관된 인센티브 정책을 통해 이들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사업비의 80%를 장기 저리로 대출해주는 게 대표적이다. 디디에 푸수 ESH 대표는 “운영 중인 사회주택의 절반 정도는 자금을 연 1% 이율에 50년간 빌려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관료가 중심이 되는 OPH와 달리 민간은 현장에서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며 “업체가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주주 배당 등으로 동기 부여를 충분히 해준다”고 설명했다.
  
   ○중산층 겨냥한 사회주택 늘려
  
   프랑스 사회주택은 국민의 70%가 입주 자격을 갖는 등 보편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도 우리나라와 다르다. 주택 유형은 소득 기준으로 3개로 나뉜다. 기준이 가장 높은 PLS 소득 기준이 약 7만6500유로(4인 가구 기준)로, 연봉이 1억1150만원인 가정도 입주할 수 있다.
  
   최근에는 중산층을 겨냥한 ‘중간임대료 주택’에 집중하고 있다. 사회주택보다 소득 기준(9만7904유로)을 더 완화한 제도다. 중간임대료 주택 공급은 2018년 9195가구에서 2021년 1만7912가구로 두 배가량으로 늘었다. 민간 부동산기업이 전체 공급량의 4분의 1을 중간임대료 주택으로 공급하면 20년간 토지세를 면제해주고, 20%인 부가가치세를 절반으로 감면해준다. 도시·주택 전문가인 장 피에르 셰페르는 “국민의 85%가 시세보다 저렴한 월세로 살 수 있다”며 “프랑스는 다양한 세금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통해 시장과 사회주택 사이의 중간지대를 채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파리=이유정 기자


네덜란드 '집주인 부담금'걷자 임대주택 급감 … 결국 올해 폐지

 
세금 받아 주택 늘리려다 실패

총괄부처도 폐지했다 작년 부활
 

네덜란드는 120년이 넘는 사회주택 역사를 가진 주거복지 선진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회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시장의 3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주택 품질이 좋아 ‘사회적 낙인효과’가 없고, 소셜믹스(임대와 분양 혼합 배치)도 잘 이뤄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네덜란드가 ‘사회주택 천국’으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 11일 찾은 암스테르담은 이런 수식어와 딴판이었다. 높은 민간 임차료, 긴 사회주택 대기 시간 등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청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루벤(29)은 “암스테르담에서는 집을 구할 수 없어 40㎞가량 떨어진 라인스뷔르흐로 옮겼다”며 “자식과 멀리 떨어져 살게 된 부모 세대에선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됐느냐’는 한탄이 나온다”고 했다.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등에선 주거난에 항의하는 시위가 심심찮게 벌어진다. 사회주택과 민간주택 사이에 낀 중산층을 ‘잠재적 홈리스’로 부를 정도다.
  
   네덜란드는 국토 면적은 좁은데 가구 분화와 고령화·도시화, 이민자 유입 등으로 주택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엄격한 환경 규제 등으로 공급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사회주택 공급업체를 직접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하자 주거난에 불이 붙었다는 게 전문가의 평가다.
  
   2013년 도입한 ‘집주인 부담금’은 50가구 이상의 사회주택을 임대하는 법인·개인에게 주택 가치의 일정 비율을 매년 세금으로 내게 하는 제도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사회주택 업체들이 집주인 부담금으로 낸 비용은 12억유로(약 1조7300억원)에 달했다. 부담금 때문에 소득이 줄자 업체들은 보유한 사회주택을 팔거나 집이 망가져도 수리하지 않고 있다. 사회주택 공급업체를 대표하는 AEDES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네덜란드 사회주택은 10만 가구 이상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거난이 사회문제로 불거지자 결국 정부는 올해부터 이 부담금을 폐지했다. 사회주택협회인 AFWC의 스티븐 크롬하우트 선임연구원은 “암스테르담은 시와 협회가 합의해 2년 전부터 집주인 부담금을 적용하지 않았고 그 결과 공급이 늘어나는 추세”라면서도 “사회주택이 여전히 부족해 타깃층을 일반 시민에서 빈곤층과 난민에게 집중하는 방향으로 사업 성격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 선진국’이란 수식어에 취한 정부의 해이함도 한몫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1년 주택총괄 부처를 폐지하고 환경부 등에 업무를 이관했다. 문제가 곪을 대로 곪은 지난해에야 부처를 부활시켰다.   암스테르담=이유정 기자
  
  
  
   A1면 ‘역대급 주거난’서 계속


개인간 임대가 80% 한국 '기형적 시장'이 전세사기·역전세 초래




국내 임대차 시장은 개인이 개인에게 전·월세를 놓는 ‘비제도권’ 비중이 전체의 80%에 달한다. 민간을 적극 활용해 중산층 주거 안정을 꾀하는 프랑스 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전세사기와 역전세(계약 당시보다 전셋값 하락)난 역시 개인이 전·월세를 공급하는 기형적 임대시장 구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는 ‘임대시장 선진화’를 기치로 2015년 ‘뉴스테이’라는 제도를 도입하며 기업형 임대 육성을 공언했다. 하지만 기업형 임대 제도는 걸음마를 제대로 떼기도 전에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기업 특혜’ 시비에 따른 정부의 말 바꾸기, 인기영합주의적인 법 개정 등이 반복되며 사업 리스크가 커져서다.
  
   뉴스테이 후신인 공공지원 민간임대는 건설사, 시행사 등이 주택도시기금의 지원을 받아 임대주택을 짓는 제도다. 저렴한 금리에 공사비를 조달할 수 있고, 임대 후 분양가도 사업자가 정할 수 있다. 수요자에게도 유리한 측면이 많다.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에 최장 10년간 거주할 수 있고, 임차료도 주변 시세의 75~90%로 낮아서다. 하지만 올 상반기 기업들의 참여 규모는 690억원으로 작년의 6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산업본부장은 “손바닥 뒤집듯 정책이나 법이 바뀌는 상황이 반복되면 어떤 기업도 리스크가 큰 임대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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