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6%서 계속 떨어져
경제학과 지망생도 과목 외면
초·중·고 경제 이해력 60점 그쳐
위기의 경제교육
경제 교육이 빈사 상태에 빠졌다. 경제 과목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 비율이 1%대로 고꾸라졌고 그나마 2028학년도 수능에서 퇴출될 위기다. 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하려는 수험생까지 경제 수업을 듣지 않을 정도로 일선 교육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경제 수업이 어렵고, 성적을 내기에도 불리하다는 인식이 퍼진 결과다. 사회에서 경제 지식이 중요해진 시대 흐름에 맞지 않게 교육 현장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6월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에서 응시생 38만1673명 중 경제 과목 선택자는 5588명으로 1.5%에 그쳤다. 사회탐구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 대비 비율을 따져봐도 2.9%에 불과했다.
실제 수능에서는 비율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치러진 2023학년도 수능에서 응시 인원 44만7669명 중 경제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은 4927명으로 1.1%에 그쳤다. 이 비율은 2007학년도 16.0%를 정점으로 하락해 2012학년도에 한 자릿수(6.0%)로 낮아졌고, 현재는 1% 선마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경제 과목은 아예 수능 선택과목에서 제외될 위기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5년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기 위한 교과목 개편으로 현재 9개인 사회교과의 일반선택 과목을 4개로 줄이는데, 경제 등 나머지 5개 과목은 수능에 출제되지 않는 진로선택 과목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2028학년도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국민의 경제이해력이 저조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잘못된 교육 개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초·중·고교 학생 1만5000명을 대상으로 경제이해력을 조사한 결과 평균 점수가 100점 만점에 60점 안팎에 그쳤다. 이에 따라 “학업 성취도를 높여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사회적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학생들이 초·중·고교에서 경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 보니 성년이 돼도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강진규 기자

① 99%가 외면하는 경제과목
전국 고교 중 과목 개설 27%뿐
수업 어렵고 입시에 불리 관심 뚝
경제 안배우고 사회 나가는 셈
“2023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서울대 경제학부에 네 명이 합격했는데 경제 과목을 들은 학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심상민 대일외국어고 경제 교사)
경제 교육이 외면받고 있다. 국가 경제 규모는 나날이 확대되고 경제 현상도 복잡해지고 있지만 교육은 따로 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경제적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 ‘경제 문맹’을 양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 과목 개설 고교 30% 밑돌아
9일 교육계에 따르면 현재 경제 교육은 초·중학교에선 공통 과정인 ‘사회’ 과목을 통해, 고교에선 문·이과 공통 과정인 ‘통합사회’와 선택 과정인 ‘경제’ 과목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사실상 고교 과정에서는 경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통합사회는 ‘경제 및 금융’ 관련 단원이 한 개밖에 없고, 경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응시율이 1%대에 그칠 정도로 수업을 듣는 학생 자체를 찾기 힘들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전국 고교 1758개(특성화고·예술 계열 특목고 제외)를 전수조사한 결과, 2019년 기준으로 학생의 과목 선택이 시작되는 2학년에 경제 과목을 개설한 학교는 27.4%에 불과했다. 민 교수는 “대학에서 경제학과 등에 가지 않는 한 경제 교육은 고등학교가 마지막인데, 대부분 학생이 경제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사회에 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능에 불리…교과서도 어려워
경제 과목이 학생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수능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심상민 교사는 “지난해 수능에서 4927명이 경제 과목에 응시했는데 1등급을 받으려면 상위 200위 안에는 들어야 한다”며 “경제 공부가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주로 성적 상위권 학생이 응시하기 때문에 일반 학생은 섣불리 경제 과목을 선택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행 경제 교과서가 학생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 교사는 “다른 사회과목은 학생들이 교과서만 보고 공부해도 경제 과목은 <맨큐의 경제학> 등을 같이 보면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생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난이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이에 실패한 것 같다”고 말했다.
2028학년도부터는 경제가 수능 선택과목에서 제외될 전망이어서 경제 전문가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교육개편이 경제교육지원법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경제교육지원법은 4조에서 ‘국가는 경제 교육의 기회가 충분히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했고, 5조에서는 ‘국민의 경제이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적합한 경제교육이 활성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문화했다.

○“경제 알아야 포퓰리즘 정책 막아”
전문가들은 이대로 경제 교육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령자뿐만 아니라 중장년층과 청년층도 금융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무리한 투자, 불완전판매, 금융사기 등 경제 관련 각종 문제에 휘말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재단이 지난해 20·30세대 청년 20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 2명 중 1명은 무리한 대출 등을 통해 투자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응답자는 “고교 때까지 제대로 된 경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경제 지식은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이라는 의견도 있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인 김홍기 한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권에서 각종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유권자들이 경제 지식이 부족하면 이를 제대로 여과해서 판단하지 못한다”며 “정치 발전을 위해서라도 경제 교육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경호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학생들이 수능에서 반드시 경제 과목에 응시하도록 해 경제 문해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강진규 기자
경제 안 배운 교사가
갈수록 개설 학교 줄어들어
예비교사 절반 이상이
전국 11개 교육대학 중 단 4곳만 경제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가르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회과 심화전공이 아니면 수강할 수 있는 교양 경제 과목이 없는 곳도 있었다.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경제 교육을 더 하려고 해도 적임자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은경 강원대 강사가 쓴 ‘교육대학에서 교양 경제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전국 11개 교대 중 교양 경제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대학은 네 곳뿐이었다. 다섯 곳은 선택과목으로 개설해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게 했고, 한 곳은 경제 과목을 ‘글로벌 사회’ 중심으로 개편한 뒤 별도의 경제 과목을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2007년 조사 때와 비교하면 경제 과목을 개설한 교대는 11곳에서 10곳으로,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학교는 6곳에서 4곳으로 줄었다.
한 교대는 입학생 360명 중 120명만이, 또 다른 교대에선 200명 중 40명만이 경제 수업을 들은 것으로 파악됐다. 보고서는 전체적으로 예비교사의 절반 이상이 교대에서 경제 수업을 듣지 않고 현장에 투입된다고 봤다.
초등학교 교과목에 경제 과목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과 교과목에 경제 관련 내용이 있는 상황에서 대학 때 경제 수업을 듣지 않은 교사가 양성되는 것은 경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을 비롯한 경제 교육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학교나 교육청 등에서 경제 수업을 강화하려고 해도 전문적으로 경제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경제 관련 내용의 수업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교사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 강사는 “예비교사의 경제 수업을 필수 교양으로 하되 차선으로는 특강과 온라인 콘텐츠 개발 등을 통해서라도 초등 경제 수업 과정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강진규 기자
일본 고등학생들은 작년 4월부터 학교에서 주식투자와 펀드의 개념과 활용법을 배우고 있다. 가정 교과서에 ‘자산 형성’ 관련 내용이 포함되면서 경제 교육의 범위가 넓어졌다. 한국이 경제 교육에 소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은 이전에도 저축을 비롯한 기본적인 경제 교육을 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융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일반사회 교과목에 ‘금융상품을 활용한 자산운용에 수반되는 리스크(위험)와 리턴(수익)을 알아보자’는 학습목표를 담았고, 수학에서도 등비수열 등 수학 개념을 저축, 대출 등 금융과 연결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일본만이 아니다. 주요국에서는 경제 교육을 의무화한 곳이 많다. 미국은 2014년 이후 모든 주에서 경제 교육을 표준 교육과정에 포함했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경제 교육을 의무로 이수하도록 한 주는 1998년 13개에서 2018년 22개로 증가했다. 개인의 금융 관련 교육을 의무화한 주는 같은 기간 1개에서 17개로 늘었다.
영국도 2014년 경제 교육을 의무화했다. 캐나다는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과 소비생활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이 경제 교육을 확대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복잡한 거시경제와 관련한 교육보다는 실생활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금융 교육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에선 은행 계좌를 만들고 활용하는 방법, 수표를 쓰고 보내는 방법, 신용등급을 관리하는 방법 등 개인의 금융 수요에 중점을 둔 경제·금융 교육이 최근 중점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제 교육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교사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방안도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일본은 금융청과 증권사가 고등학교 파견 교육을 하고, 도쿄증권거래소는 교사를 대상으로 무료 연수를 진행한다. 미국은 경제교육협의회와 교육 전문기관인 점프스타트 등이 교육 내용을 개발하고,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강진규 기자
'경제신문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네북' 원화 … 글로벌 이슈 때마다 휘청 (23) | 2023.08.14 |
---|---|
300만 유커 온다 … 여행 유통업계 ‘화색’ (16) | 2023.08.11 |
태풍 카눈, 수도권 때린다 … 최대 600mm 물폭탄 (45) | 2023.08.09 |
"벼락거지 될라" … 빚투 전쟁터 된 증시 (15) | 2023.08.07 |
"하남에 3조 공 모양 공연장 짓겠다" (23) | 2023.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