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신문 스크랩

"벼락거지 될라" … 빚투 전쟁터 된 증시

작은날 2023. 8. 7. 18:09

 

 

올 들어 2차전지, 초전도체 등 일부 테마주가 과열되자 시중 자금이 증시에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다. 초단기로 돈을 빌려 테마주에 몰빵하는 ‘묻지마 투자’는 전 연령대로 확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투자 상품에서는 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주식시장 변동성이 유례없이 커졌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전체 주식 거래금액은 총 567조3651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정부 예산(639조원)의 90%에 달하는 자금이 지난 한 달간 증시를 오간 것이다. 이런 자금 흐름은 코로나19 사태 직후 소위 ‘동학개미’ 운동으로 국내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찍은 2021년 7월(579조원)에 근접한 것이다. 지난달 하루 평균 주식 거래대금은 약 27조174억원으로 올 1월(13조1412억원)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초단기 빚투’(빚내서 투자)도 덩달아 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하루 미수거래금액은 7733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올해 초 미수거래금액(1929억원) 대비 네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거래 체결 후 대금 결제일까지 이틀의 시간을 활용해 ‘외상’으로 투자하는 개미투자자가 빠른 속도로 늘었다는 의미다. 주식을 사기 위해 1~3개월간 자금을 빌리는 신용대출(융자) 규모도 올초 16조5311억원에서 지난 3일 기준 20조1932억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장기 분산 투자할 수 있는 공모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에서는 자금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국내외 주식형 펀드와 ETF에서 올해에만 4조9170억원이 순유출됐다.
  
   증권가는 자신만 투자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확산하면서 갈 곳 없는 시중 자금이 테마주에 쏠렸다고 분석했다. 이런 투자 패턴이 전 연령대로 퍼지는 현상은 과거 2030세대가 주도한 ‘코인 광풍’과 다른 특징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쏠림 현상으로 2차전지 관련주 주가가 더 오를 수 있겠지만 단기 과열로 인한 주가 조정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상훈 기자



전쟁터 된 증시 … 月 거래대금 570조 육박


“나만 뒤처질라” 포모 심리 확산
배터리 중·소형株도 묻지마 투자
60대 이상, 반년새 거래액 157%↑

“뒤늦게 들어온 투자자, 거품 키워

향후 주가 조정 땐 피해 커질 듯"

국내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승세 씨(35)는 최근 2년간 매달 적립식으로 투자한 타깃데이트펀드(TDF)와 S&P500지수 추종 상장지수펀드(ETF)를 지난달 중순 모두 매도했다. 매도 자금은 2차전지와 관련한 2개 종목을 매수하는 데 사용했다. 노후를 위해 장기투자 원칙을 착실히 지켜오던 김씨가 돌연 마음을 바꾼 건 2차전지주 투자 성과를 올린 인터넷 커뮤니티 인증글 때문이다. 김씨는 “2차전지로 불과 수개월 만에 몇억원을 벌었다는 인터넷 게시물을 보고 직장 동료들의 투자 성공담을 듣고 나니 연평균 8~9%에 달하는 미국 인덱스 장기투자 기대수익률이 하찮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맘카페 올라오는 2차전지 투자 인증글
  
   증시 테마주 투자가 날이 갈수록 성행하고 있다. 2차전지 등 일부 테마주가 급등하자 자신만 투자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과거 부동산 등에 쏠렸던 여유 자금이 경제 불확실성 우려가 커지자 단기 투자 시장에 몰려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6일 코스콤에 따르면 2차전지 대장주인 에코프로는 지난달 코스닥시장에서 거래된 금액이 총 32조7596억원에 달한다. 올 1월 8760억원에 비해 37배 넘게 불어났다. 단기 과열을 가늠하는 지표인 ‘시가총액 대비 거래금액 비중’도 에코프로는 1월 28%에서 지난달 100%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에코프로비엠의 거래금액도 1조1144억원에서 27조2821억원으로 26배가량 증가했다. 올 들어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 주가가 각각 967%, 307% 급등하자 투자금이 몰려든 것이다.
  
   ‘에코프로 형제’뿐 아니다. 최근 들어 2차전지 대장주로 거듭난 포스코홀딩스는 거래대금이 올초 2조3072억원에서 7월 37조7021억원으로 16배 넘게 증가했다. 중·소형 주식에도 ‘묻지마 투자금’이 몰렸다. ‘배터리 아저씨’로 유명해진 박순혁 작가가 근무한 금양은 거래대금이 1월 1조1934억원에서 7월 12조5044억원으로 늘었다. 이 회사 주가도 올 들어 562% 뛰었다.
  
   단기과열을 진단하는 지표인 ‘예탁금 회전율’은 올해 초(1월 2일) 18.82%에서 지난 3일 51.24%로 상승했다. 고객이 맡겨둔 예탁금 중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자금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통상 증권업계는 이 수치가 40%를 넘으면 과열권 초입, 50%를 초과하면 과열권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코인 광풍 넘어서는 열풍
  
   이런 테마주 열풍은 2~3년 전 국내 시장에 불었던 ‘코인 광풍’에 비견된다. 당시에도 포모 증후군에 뒤늦게 뛰어든 개미 투자자가 많았다. 다른 점도 있다. 20·30세대가 주도한 코인 투자와 달리 전 연령대가 몰려들고 있다. 대형 증권사 A사의 연령별 고객 주식 거래 현황에 따르면 1월 대비 7월 증시 거래대금 증가율은 20대가 170%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30대 164% △40대 147% △50대 154% △60대 이상 157% 등 다른 연령대도 20대와 비슷한 수준의 증가율을 보였다. A 증권사 관계자는 “평소 주식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맘카페, 바둑 커뮤니티, 게임 관련 카페 등에서도 2차전지주 얘기가 올라온다”며 “시장에 새로 들어오는 투자자가 거품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테마주 빚투에 시장 변동성 높아져
  
   전문가들은 특히 ‘단기 빚투’(빚내서 투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위험 요인으로 보고 있다. 거래 체결 후 대금 결제일까지 이틀의 시간을 활용해 ‘외상’으로 투자하는 미수거래금액은 올 들어 4배가량 불어났다. 주식을 사기 위해 1~3개월 단기간 돈을 빌리는 신용대출(융자) 규모는 올해 초(1월 2일) 16조5311억원에서 이달 3일 기준 20조1932억원으로 늘었다. 증가세를 주도한 건 대부분 2차전지 관련주다.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자 빚을 내더라도 투자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판단한 투자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빚투가 쌓이면 향후 주가 조정 과정에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일정 비율 이하로 주가가 하락하면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매도하는 반대매매가 일어나고, 이런 반대매도가 다시 주가 하락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성상훈 기자


찬밥 신세 된 주식형 펀드·ETF, 올해만 4.9조 빠져나가


장기 분산투자 등돌린 개미들
TIGER 나스닥100, 2782억 유출

S&P500 선물도 2105억 빠져

올해 테마주에 투자금이 몰리면서 장기투자 상품에선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6일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4일까지 해외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에선 4907억원의 자금이 순유출됐다. 상품별로는 ‘TIGER 미국 나스닥100’에서 2782억원, ‘TIGER S&P500선물’에서 2105억원이 순유출됐다. ‘KODEX 나스닥100 선물’과 ‘ACE 미국 나스닥100’에서도 각각 1491억원, 517억원이 빠져나갔다. 이들 ETF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장기투자로 돈 버는 상품’으로 각광받으며 자금이 몰린 상품이다. 올해 미국 증시가 크게 오른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자금 유출은 이례적이다.
  
   국내 주식형 ETF에서도 총 1조8916억원이 빠져나갔다. 국내 증시 전체에 투자하는 ‘TIGER MSCI KOREA TR’에서 9428억원이, ‘KODEX 200TR’에서 2979억원이 순유출됐다.
  
   주가 상승률이 높은 2차전지 관련 일부 ETF에서도 자금 순유출이 있었다. ‘TIGER 2차전지테마’(-7890억원), ‘TIGER KRX 2차전지K-뉴딜’(-1875억원) 등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변동성이 낮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배터리 제조업체 비중이 높고 에코프로 등 소재업체 비중이 낮은 ETF는 2차전지 테마에서 외면받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내주식형 펀드와 미국주식형 펀드도 외면받고 있다. 올 들어서 각각 1조2300억원, 1조3047억원이 빠져나갔다. ‘신영밸류고배당’(-814억원), ‘베어링고배당플러스’(-316억원), ‘한국밸류10년투자’(-194억원) 등 시장에서 장기간 플러스 수익률을 내며 인정받고 있는 장기투자형 공모펀드에서도 투자금이 나갔다. ‘한국투자미국배당귀족(H)’(-1622억원), ‘피델리티글로벌배당인컴’(-715억원) 등 해외주식형 펀드도 인기가 없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특정 소수 종목이나 테마에 시중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잦아지면서 국내 장기 투자 인프라가 위축되고 있다”며 “장기 분산 투자를 장려할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태웅/성상훈 기자


150배 뛴 '닷컴 버블의 원조' 새롬기술도 나락 

 

장기 분산투자 등돌린 개미들

TIGER 나스닥100, 2782억 유출

S&P500 선물도 2105억 빠져

 

국내 증시에서 테마주 쏠림이나 단기 빚투(빚내서 투자) 현상은 종종 있었다. 투자 성과는 대부분 부진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99~2001년 ‘닷컴 버블’이다. 정보기술(IT), 통신 기업이라는 ‘딱지’만 붙으면 주가가 폭등했다. 새롬기술, 골드뱅크, 장미디어, 드림라인, 메디슨 등 종목이 불을 뿜었다. 새롬기술은 인터넷전화 혁신 기술에 대한 기대감으로 1999년 10월 1890원에 거래되던 주가가 2000년 3월 초 28만2000원까지 약 150배 뛰었다. 거품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롬기술 주가는 2000년 말 5000원대로 폭락했다. SK텔레콤도 1998년 말부터 2000년 초까지 통신 분야 기술 혁신에 대한 기대로 약 10배 뛰었다. 아직까지도 당시 시가총액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 중후반엔 바이오 테마 열풍이 불었다. 셀트리온, 영진약품, 신라젠 등 바이오업체들이 글로벌 바이오 산업을 주도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폭등했다. 셀트리온 주가는 2016년 초~2017년 초 사이 4배 가까이 오르면서 37만원을 돌파했지만 현재 15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2016년 7배 오른 영진약품, 2017년 10배 가까이 오른 신라젠도 오래 지나지 않아 거품이 꺼졌다.
  
   최근 사례로는 2021년 ‘언택트’ 테마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IT 혁신에 대한 기대감으로 플랫폼과 메타버스 관련주가 폭등했다. 대형주 중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에 자금이 쏠렸다. 현재 네이버 주가는 최고점인 2021년 7월 45만2000원의 절반 수준이다. 한때 16만원을 돌파한 카카오의 주가도 현재 5만1800원으로 3분의 1토막이 났다.
  
   박종관/성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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